E-6-2 비자

[한겨레] E-6 비자는 성매매 허가증?

E-6 비자는 성매매 허가증?


2012-11-03 

한겨레

정은주 기자


[특집] ‘연예인 비자’로 불리는 ‘E-6’ 비자, 사실상 성매매 업소에 외국인 여성 공급하는 수단으로 전락… 정부는 왜 성매매 강요와 인신매매 피해 악순환 알면서도 ‘ E-6’ 제도 개선은커녕 방관하나


“예술흥행(E-6) 비자를 갖고 입국한 이주(외국인) 여성들이 인신매매와 성매매 착취에 희생되고 있어 특별히 우려하고 있다.” (201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


“E-6 비자를 받은 이주 여성들이 다양한 경로로 성매매를 강요당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를 우려한다.”(2012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


“한국은 강제적 성매매의 근원지이자 경유지, 목적지다. E-6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일부 외국인 여성들이 강제적인 성매매의 표적이 되고 있다.”(2012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


술 파는 점수 못 채우면 ‘바파인’ 강요

한국 법무부는 E-6 비자를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 연주, 연극, 운동경기 등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 발급한다. 이른바 ‘연예인 비자’라고 불린다. 2011년 기준으로 E-6 비자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4721명이다. 여성(75.8%)이 남성(24.2%)보다 3배가량 많다. 특히 E-6 비자의 미등록자(불법체류자) 비율은 각종 이주노동자 가운데 가장 높은 32%다. 여성의 미등록 비율이 1990년대 초반에 비해 44배나 증가한 탓이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안태윤 연구위원은 “E-6 비자로 온 외국인 여성들이 성매매 등 고용계약과는 다른 노동을 강요받고 폭력과 매상 압박, 잦은 이송 등 다중적인 인권침해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에서 밴드 가수로 활동했던 여성 리아(28·가명)는 돈을 많이 벌려고 한국 연예기획사를 통해 2009년 3월 입국했다. 고용계약서는 인천공항에서 처음 봤다. 연예기획사는 월급이 130만원이라고 적어놨지만, 실제로는 40만원만 준다고 했다. 비행기표 값으로 첫 월급을 떼갔다. 낯선 땅에서 여권까지 빼앗긴 리아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 도착해서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놀랐어요. 딱 한 곡만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그다음부터 술을 마시고 손님을 접대하도록 하는 거예요. 손님들은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런 말만 하고요.”


2011년 12월 여성가족부의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클럽)에서 일하는 여성은 술을 팔아 점수를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주한미군 출입 클럽에서는 한 달에 최소 300점(1잔=1점)을 할당한다. 이윤은 2:8, 3:7로 나눈다. 1만원짜리 주스를 한 잔 팔면 외국인 여성이 2천원을 얻고 나머지는 업주 몫이라는 뜻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여성의 몫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한 달 내내 휴일도 없이 일했는데도 수입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여성에게 업주는 한 번에 20점을 메울 수 있는 바파인(Bar Fine·성매매) 방법을 알려준다. 성매매를 처음엔 거부하지만 업주의 “더 나쁜 업소로 보낸다”는 협박과 “다른 동료의 포기하는 상황” 등을 지켜보며 같은 길을 걷는다.


기지촌 지역에 집중된 E-6 비자 발급

리아도 그랬다. “한 달 반 동안 바파인이 세 번 있었어요. 손님이 돈을 내면 따라나가야 해요. 싫다고 해도 클럽 매니저가 ‘너 처녀 아니잖아’ ‘가서 해’라고 소리를 질러요.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려고도 했어요.” 리아는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업주는 “계약서에는 6개월 일하기로 돼 있으니 떠나려면 빚을 갚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술 접대를 싫어하는 리아에게 업주는 각성제를 ‘몸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복용하게 했다. “약을 먹으니까 몸이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게 일종의 마약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리아를 길들이려는 듯 연예기획사는 더 열악한 업소로 보내버렸다. “(업주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 나쁜 클럽으로 보내겠다고 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여성부가 2011년 외국인 성매매 여성 9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33.3%가 업소를 옮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매매 강요에 항의하거나 술 매상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업소를 옮긴다는 얘기를 사전에 듣지 못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리아의 경험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E-6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이 지난 10년간 겪어온 악순환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을 뿐이다.

E-6 비자는 오래전부터 기지촌과 운명을 같이해왔다. 1990년대 이후 주한미군 감축으로 기지촌이 침체하고 성매매 여성의 수가 줄어들자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가 밀집한 경기도 동두천시와 평택시는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했다. 관광특구로 확정되자 기지촌 업주들의 조직인 한국특수관광협회를 통해 E-6 비자를 발급받은 이주 여성들이 기지촌에 고용됐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러시아·필리핀 등지에서 모집한 여성이 1093명에 이르렀다. 1999년 정부가 외국인 공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허가제에서 추천제로 변경하자 비자 발급은 더욱 늘어났다. E-6 비자를 받은 외국인 여성은 1990년 86명이었지만 2011년에는 3220명으로 21년 사이에 37배나 증가했다. 필리핀 여성이 85%(2760명)를 차지한다. 이들은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시·평택시·의정부시 세 곳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전국 외국인 전용 유흥시설(369곳)의 절반가량(185곳)이 몰려 있는 탓이다.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 조처 시급해

E-6 비자를 받은 연예인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성매매를 하는 ‘유흥접객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E-6 비자 신청 서류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항체반응 음성 확인서’가 포함돼 있던 게 그 방증이다. 평택 외국인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시설 박수미 소장은 “다른 비자 신청 절차와 차별화된 조건 서류”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다른 외국인들에게 적용하지 않는 이러한 정책을 적용하는 걸 보면, E-6 비자 소지자를 ‘전문 가수’가 아니라 ‘성매매 여성’으로서 낙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덧붙여 이들은 입국 후에도 국내법상 유흥접객원이 받아야 하는 병원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는다.” 여성단체의 이런 지적에 따라 정부는 HIV 확인서를 E-6 비자 서류에서 제외했다.


인신매매나 성매매는 명확한 불법이지만 실제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라미 변호사의 경험이다. “E-6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에게 업주와 기획사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빼앗고 성매매를 강요한 사례가 있었다.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여성들이 성매매처벌법의 인신매매죄로 고소해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여권 등을 압수한 것만으로는 ‘강요행위’가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성매매가 이뤄졌다는 직접적인 증거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건이 불기소로 종결된다.” 간혹 성매매알선죄만 적용해 업주가 법정에 서지만 이마저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민사소송을 내도 300만∼700만원의 위자료를 받는 데 그친다. 게다가 외국인 여성들은 불법적 성매매를 했다고 자수하는 꼴이 돼 법정싸움이 끝나면 강제출국당하고 만다. 반면 연예기획사나 업주는 미래의 피해자가 될 새로운 외국 여성들을 찾아나선다.


소라미 변호사는 “생계가 절박한 외국인 여성들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숨어서 노동을 하거나 부당한 현실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다”며 “인신매매 악순환의 고리를 근절하려면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조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보호 조처가 법·제도적으로 마련돼야 인신매매 범죄를 단속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인신매매 피해자의 체류 자격을 보장하고 3년이 지나면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도 무엇이 인신매매 범죄인지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 방안을 명시한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0년 7월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흥시설 파견하지 않도록 해야

지난해 여성부의 의뢰로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을 연구한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E-6 비자를 받은 여성을 유흥시설에 파견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조사해보니 내국인, 가족 단위로 관람·개방·출입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실제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매매 강요 등의 우려가 없는 곳으로 공연 장소 범위를 축소하는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E-6 비자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와 인종차별철폐위, 미국 국무부 등의 권고도 다르지 않다. “포괄적인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해 인신매매 범죄자를 수사·기소하고, 유죄판결이 내려지도록 노력해야 한다.”(2012년 미 국무부) “E-6 제도를 재검토하고 관련된 행위자를 통제할 것을 권고한다.”(2012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 “인신매매 피해자의 경제적 역량을 강화해 사회로 복귀하도록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201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 한국 정부의 실천만 남아 있다.


리아도 그랬다. “한 달 반 동안 바파인이 세 번 있었어요. 손님이 돈을 내면 따라나가야 해요. 싫다고 해도 클럽 매니저가 ‘너 처녀 아니잖아’ ‘가서 해’라고 소리를 질러요.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려고도 했어요.” 리아는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업주는 “계약서에는 6개월 일하기로 돼 있으니 떠나려면 빚을 갚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인신매매 피해자 대책

특별 체류허가 제도로 보호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체류허가 제도를 두고 있다. 미국은 2000년 인신매매와 폭력 피해자 보호법을 제정하며 T 비자를 1년에 5천 개 도입했다. 피해자가 민형사 사법제도를 이용해 권리를 구제받고 인신매매범 처벌에 협조하도록 지원하고 영주권을 획득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T 비자를 신청하려면 △미국에 거주하는 △심각한 인신매매 피해자로서 △사법 당국의 인신매매 범죄 수사에 협력하고 △이후 추방되면 큰 고통이 있을 것임을 밝혀야 한다. T 비자를 받으면 노동허가를 취득하고 난민과 같은 사회보장 혜택을 누린다. 최대 유효기간은 4년이다. 3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캐나다에선 일반적으로 이민난민보호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비자나 영주권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외국인에게 임시체류 허가를 내주는데,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가 그렇다. 제도의 취지는 이렇다. 인신매매자는 피해자의 여권과 신분증을 빼앗고 지속적으로 감시·감독하며 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 또 폭력을 일삼거나 폭력을 행사할 위협을 가한다. 만일 피해자가 적법한 체류 신분을 잃게 되면 인신매매자는 더욱 피해자를 통제하기 쉬워진다. 피해자의 불법체류 신분을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캐나다 이민부는 피해자에게 임시체류 허가증을 발급해 인신매매의 수렁에서 벗어나 인신매매범 수사에 협조할 기회를 제공한다. 피해자 본인이 직접 신고하거나 시민단체가 피해자로 보인다고 고지하는 경우에 인터뷰를 통해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단기(180일)와 장기로 나뉘며, 모든 체류 허가자는 취업할 자격이 생긴다. 또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할 권리도 얻는다. [참고 문헌] 한태희 변호사의 토론문 ‘해외 외국연예인 정책’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예술흥행 사증 외국인 인권토론회, 2008년 10월22일)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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